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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 광지원 농악단 “시민과 동행 했다”지난 4일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총감독 김홍수) 제6회 정기공연 희망과 행복의 판스테이지 ‘동행’ 공연이 곤지암도자공원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광주시 주최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주관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광주시무형문화제 제3호 '광지원농악'의 보존 계승 및 시민의 문화적 향유를 촉진하기 위한 정기공연이 주제 대로 시민과 동행했다. 악장 염두용 외 12인의 단원들이 농악의 신명을 펼첬다. 한편 이번 공연은 제27회 광주왕실도자컨퍼런스 축하공연과 제20회 세계관악컨퍼런스 광주시 개최 성공을 기원하는 공연으로 뜻 깊었다.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의 ‘남한산성의 울림’ 임웅수 명인의 ‘상공놀이’, 임성준 명인의 ‘고창고깔소고춤’. 이선영 외 4인의 '경기민요', 김경수 명인의 ‘채상설장고’, 박정철 명인의 ‘구미무을농악 쇠놀이’, 서한우 명인의 ‘버꾸춤’ 유희스가,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12발 상모돌리기, 휘날레는 대동한마당 출연진 모두와 관객이 어우러져 난장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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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팽나무 사진으로 만나는 한국관광"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17일까지 서울역 3층 대합실에서 ‘2023 대한민국 관광공모전 사진 전시회’를 개최한다.'지금, 한국을 여행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경관, 전통문화, 도시경관 등 한국의 매력을 담은 120여점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기간 △공모전 수상작 소개관 ‘지금, 한국을 여행해’ △지역별 관광 사진관 ‘지금, 전국을 유랑해’ △‘최갑수 여행작가’가 참여한 사진에세이관 ‘지금, 낭만을 경험해’ 등 3개 섹션을 운영한다.전시에 앞서 지난 5월부터 진행된 공모전에는 총 6432점의 사진이 출품됐다. 총 세 차례의 심사를 거쳐 대통령상 1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3점, 한국관광공사 사장상 88점 등 총 92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대통령상(대상)에 선정된 ‘우영우 팽나무(경남 창원)’는 "폐쇄와 단절을 의미하던 팬데믹이 끝나고 밝은 내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심사위원단의 호평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금상)에는 ‘설국여행(강원 태백)’, ‘가을n한탄강(강원 철원)’ 등이 선정됐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상에는 ‘황금빛 다리(전북 전주)’와 ‘한반도의 아침(충북 괴산)’ 등이 이름을 올렸다. 관광공사 한국관광 사진갤러리에서는 이번 공모전 수상작 등 총 10만여장의 한국관광 사진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어 국민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온라인 사진 다운로드 이벤트에 참여하면 추첨을 통해 코닥 즉석카메라 등의 경품을 증정한다.김경수 관광공사 디지털콘텐츠팀장은 "사진 한 장이 여행의 동기와 영감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번 전시회가 관람객들에게 여행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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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국악한마당 '각양각색'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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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동두천 “각양각색” 국악한마당 펼쳐진다동두천시 주최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지부장:김경수) 주관으로 20일 오후 6시 30분 동두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매년 주최하는 2023 동두천 국악한마당이 '각양각색'주제로 펼쳐진다. 1부에서는 동두천국악협회 4개 분과 가야금병창분과, 민요분과 ,무용분과, 농악분과에서 국악의 향연을 선사한다. 2부에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광명농악' 보유자 임웅수 등 명인들의 공연이 이루어진다. 첫 무대는 가야금병창분과(정귀임,김학영,민순이,유정화,이경희,전연옥)에서 함양양장가, 내고향의 봄으로 막을 올린다. '함양양잠가'는 원래는 경상도 함양 지방의 민요로 부르는 곡이다. 이 곡을 박귀희가 편곡하여 하여 가야금병창으로 연주한다. '내고향의 봄」임일남 작사, 박귀희 작곡의 가야금병창 신민요이다. 두번째는 .민요분과(차경순,나영순,노진옥,심정옥,이지민)에서 양산도,오돌독,경복궁타령을 선사한다. 세번째 무대는 무용분과(장영애,김순숙,임은숙,김창숙,김선희,민경민,박예숙,전혜경,정금희,정장순,주숙경)에서 '연(緣)'를 주제로 한 군무를 펼친다. 여자역할의 교방무는 영남의 덧뵈기 허튼 춤을 재정립한 춤이다. 일자사위, 활개춤, 베기고, 어르는 섬세한 발 놀음, 손 놀음이 주축이며 장단에 따라 맺고 푸는데 박자마다 강약과 함께 엇 박의 리듬을 만들어 주는 독특함이 특징이다. 남자역할의 선비춤은 교방무의 남성적 춤사위로 선비들이 학문과 덕을 두루 겸비한 자로서 글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 예, 기능을 즐기며 놀을음 했던 그때의 춤이나 소리가 전통화되어 활달하고 남성적인 멋이 곁들여 표면 되었으며 두 춤의 절제 속 자유로운 춤사위를 보여드리며 여자와 남자의 연이란 하나에서 둘, 함께 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무용분과위원장 양채원 선생님이 두 작품을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네번째 농악분과에서 길놀이, 문굿으로 동두천 시민듫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예로부터 농악의 길놀이 및 지신밟기는 취타대와 같은 형태로 임금의 행차, 군대의 행진 등 나라의 큰 행사나 중요한 일에 연행 해왔다. 길놀이의 의미로 지신을 진압합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에 의미를 담아 오늘 공연에 오신 관객들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선보일 예정이다. 2부에서는 명인전에서는 최영호의 '웃다리 상쇠놀음'의 농악무와 소리와 이날의 의미를 더한다. '웃다리 상쇠놀음'이란 농악에서 상쇠가 부포상모를 쓰고 다양한 연희적 예술표현을 하며 연행하는 개인놀음이다. 이어서 지역의 소리꾼 유은서의 긴아리랑, 창부타령, 양채원의 살풀이춤, 박경남의 쑥대머리, 남도민요, 하창범 의 푸리북춤, 이수현의 '이수현류 우도설소고춤'이 펼쳐진다. 휘날레는 임웅수 명인의 '임웅수류 상공놀이'가 대미를 장식한다. '상공'이란 광명농악에서 상쇠를 높여 부르는 것으로 머리에 부포를 대신하여 상모고깔 또는 상투를 쓰고 놀이(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상쇠놀이란 부포놀이를 중심으로 쇠가락 위주로 판이 짜여 지지만 상공춤(놀이)은 굿거리 가락을 많이 쓰며 능계가락 중심으로 태평소 소리에 맞춰 판을 벌인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 보유자 임웅수의 놀이(춤) 으로 450여년 전 구름산 도당굿이 성행했었던 때 무녀였던 김선화, 원이쁜선생께서 추었던 춤 동작의 일부를 재현한 것이다.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는 김경수 지부장을 리더로 ▲무용분과(양채원)▲가야금병창분과(박경남)▲민요분과(유은서)▲ 농악분과(고양옥)등 4개분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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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농악단, '풍악이담'에서 농악,탈춤,양금 콜라보 펼쳐22일 오후 7시 동두천 시민회관에서 동두천이담농악단이 주관한 '풍악이담'이 무대에 올랐다. 경기문화재단 '2023모든예술31' 선정작 '풍악이담'은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 이수자들과 전문 공연자들이 함께 제작한 공연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과 '탈춤'이 새로이 창작된 '설장구 시나위'와 '양금 시나위'와 함께 펼쳐졌다. ▶사물놀이&양금합주: '양금 시나위', ▶탈춤: '관노가면극 '술·술탈탈 무탈하다', ▶'사물놀이&관현악 합주: '설장구 시나위',를 선사했다. 농악, 관현악과 가면극을 조합하여 신선한 무대를 엮어내어 전통 민속연희와 북한 개량악기 양금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박은수 양금 연주&김경수 가락='양금 시나위' 이담농악보존회의 박은수 양금 연주자가 연주한 '양금 시나위'(작곡:윤은화)는 경기북부 웃다리 농악 가락에 양금 편성을 더하여 새롭게 작곡해낸 곡이다. 양금 연주자 윤은화 선생이 이담농악의 대표가락인 쩍쩍이-칠채-육채-마 당삼채-짝쇠 가락을 전수받고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작곡한 곡이다. 2022년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정기공연을 통해 초연한 바 있다. 이담농악보존회의 박은수 연주자가 직접 양금을 사사받고 양금 연주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담농악의 대표적인 가락인 칠채를 바탕으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 보유자인 김경수 보유자의 특색 있는 열채 소리와 양금만의 고유 한 음색을 결합한 '칠채', 각 악기들의 주고받기 구성에 양금을 포함한 '육채', 상쇠와 부쇠가 이끌어나가는 가락을 양금으로 대체한 '짝쇠' 장단으로 이루어져있다. 관노가면극(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에서 연희되는 가면극이다. 조선시대 관청의 노비들의 놀이로 국내 유일의 무언 가면극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양반광대1명, 소매각시1명, 시시딱딱이 2명, 장자마리 2명 그리고 여러 명의 악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제1과장 장자마리춤, 제2과장 양반광대·소매각시춤, 제3과장 시시딱딱이춤, 제4과장 소매각시의 자살과 소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반광대는 신분은 양반이지만 약간 모자라고, 권력을 휘두르나 미색에 빠져 권위와 체면을 손상시키는 인물이다. 권위의 상징인 양반을 부정적인 인물로 설정하여 그들의 허세와 위선을 풍자하고 해학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설장구 시나위(구성:김경수, 작곡:이고운) 4인의 설장구 연주자와 대금, 피리, 가야금, 아쟁, 신디 5인의 기악 연주자가 함께 하는 관현타악 협주곡이다. 설장구 시나위는 4인의 설장구 연주자가 설장구 한 판을 연주하는 동안 5인의 기악 연주자들이 설장구에 맞춰 즉흥에 가깝게 주고받거나, 함께 연주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기악 연주자들은 설장구의 가락과 장단과 유사한 새로운 장단을 만들어 연주하게 된다. 이런 장단들의 구성은 시나위 연주자들과 설장구 연주자들의 협의를 통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단들로, 이전까지 없었던 가락과 기존 설장구 가락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설장구 시나위는 앞서 ‘2021 대한민국 예술축전’에서 국악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연주에는 이담농악 예능보유자 김경수, 이담농악 이수자 고양옥, 박은수, 김해민, 최영호, 황진하, 이담농악 전수자 김다운, 주한솔이 함께 했다. 총연출을 맡은 김경수 단장은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과 '탈춤'을 널리 알리고,' K-국악'의 새로운 버젼을 선사해 보았다. 최근에 새로이 창작된 '설장구 시나위'와 '양금 시나위'의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도 실험적 무대를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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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 비 건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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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70주년&정전70주년 기념,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 팡파레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6‧25한국전쟁에서 나누었던 동지애 및 인류애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는 국적이 다른 22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모였지만, 아리랑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역시 참전 용사와 유엔 합창단이 함께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무대 영상에선 각국 참전 용사들이 6‧25전쟁 때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며 한 소절씩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이날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에서도 한미동맹70주년 및 정전협정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27일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가 주관한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는 한·미우호관계 발전과 나아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아리랑에 담아냈다. 10시 현충탑과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단장:김경수),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이 함께하고, (사)아리랑연합회와 (주)국악신문이 후원했다. 김경수 지부장의 사회를 맡고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의 초혼무 '살풀이춤', 가야금병창 '아리랑',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의 '지신밟기'와 '비나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의 '이담아라리', '동두천아리랑', '황석산아리랑',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아리랑'이 불려졌다. 오전 10시 동두천 현충탑앞에서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가 동두천평화아리랑제추진단 창립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음은 선언문 중 한국전쟁 때 남북이 양측에서 각각 불렀던 아리랑이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조각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 한덩어리 된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넘어간다('정선아리랑' 1절) 우리나 님은요 날 그려 울고 전쟁판 요내들 임 그려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울며 넘네(중부전선 854고지 대적방송(對敵放送) '음탄(音彈)아리랑' 1절) 백두산봉우리 깃발 펄펄 날리고 제주도 한라산 유격대깃발 올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 간다('빨지산아리랑' 1절, ‘항미원조 전쟁 군가집’ )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는 식전행사에서 한국전쟁시 세계평화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 및 순국선열의 희생을 추모하는 추념제를 올리고, 지신밟기로 시작하여 '아리랑'을 헌정했다. 주최측은 "한미동맹 70주년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미우정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통해 더욱 한미우정을 강화하고,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의 정화와 치유를 회복하는 정주년이 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경수 회장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으로 이 땅을 정화시키고 '동두천시를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 회복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동두천'의 서사를 주제로 한 지속적인 전통문화 활동을 통해 동두천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가한 22개국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호국영령들에게 아리랑을 바친다"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 2회에는 경기 북부 지역의 민·관·군과 다문화사회를 대상으로 아리랑으로 하나가 되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의 장을 확대·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히겠다고 전했다. 유은서 회장은 "전국적 물난리로 행사가 축소된 이번 동두천평화아리랑제이지만, 우리 전 회원은 한마음을 모아 유엔 참전용사들과 순국선열들을 추념하며, 평화의 노래 '동두천아리랑'이 시민들에게 애창곡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혜솔 회장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 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부르면서 감회가 새롭다. 미군들이 널리 알린 이 아리랑이 미국 뮤직션들이 편곡하여 여러 버젼의 아리랑이 음반으로 나왔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정전 70주년이라는 정주년을 통해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담보하는 동두천의 서사는 '상생의 도시 동두천'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상생의 도시 동두천은 세계 유네스코가 주목한 아리랑의 3대정신(대동 해원 상생)을 구현할 수 있는 중추적 역활을 수행할 수 있는 서사를 담보하고 있다.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미군 7사단이 매일 아침마다 불렀던 단가 '아리랑', 1964년 안흥리에 미군 7사단이 지어준 '아리랑다리', 미군 위안부 모임 '아리랑'은 동두천 시의 역사이고 서사이다. 그만큼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요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산리에 1971년까지 2만6천명이 주둔한 미군들이 단가로 아리랑을 불렀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아리랑악보가 담긴 실크 스카프를 고국으로 보냈다. 어제 국가보훈부에서 이 '아리랑스카프'를 복원하여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밝혔다. 아리랑은 전장에서뿐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유엔대표단과 북한 측이 사열할 때도 동시에 각각 연주된 곡이다. 이날 동두천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아리랑이 불러진 것은 역사적 의미를 시사한다. 아리랑은 미래의 노래이고 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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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동두천이담농악전국대회 종합대상에 '천명'동두천시는 이담농악보존회 주관으로 지역의 문화 예술 자원 개발과 전통예술의 계승 발전, 국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오는 22일 동두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제7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및 이담농악 두드림 대축제’를 개최했다. 개회식, 심사위원 소개와 대회진행 안내, 본 대회, 시상식과 폐회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영예의 종합대상에는 '천명'(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김수헌 외 7인)팀이 수상했다. 일반부 최우수상 수상한 조의찬(고깔 설장구, 경기도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학생부(고등부, 초중등부) 최우수상에는 유용상(부포놀이.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이 수상했다. 초등부는 동두천 보산초등학교 '동두둥탁' 팀(알라노 사무엘), 고등부는 고운매(성남 아람고등학교), 이승민이 수상했다. 농악 부문의 경연으로 참가 대상은 초·중·고 학생부, 일반부로 나뉘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농악인들 30여 팀 경연이 성황리에 성료되었다. 동두천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은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작년보다 참가자가 늘었다. 물난리 와중에도 불구하고 멀리 동두천까지 와주신, 전국 국악인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대회를 통해 '이담농악'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내년에는 좀 더 편하게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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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의 '태극상모'를 아십니까조선시대에는 양주의 속현으로 속한 34개 방리 중 하나인 이담이 동두천시의 근원이다. 1953년 점차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1963년 이담면이 읍(邑)으로 승격되면서 '이담'이 동두천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다. 동두천에는 이담농악단이 있다. '이담농악'의 전신은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등이 조선후기에 정착되어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단제 (1,000년된 은행나무에서 행단제를 벌이면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뒷풀이로 구성된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1995년 '이담농악' 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어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故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故장병우(송내동) 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뒤놀음을 구성하고 광복가락과 법고놀이의 하나로 농사풀이를 재현하고 다른 농악과는 달리 농기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고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담농악 판제가 완성되었는데 당시에 이루어진 이담농악의 가락은 본래 동두천지역에서 행해지던 가락을 기본바탕으로 재창조가 이루어졌다. 1999년 경기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근래 들어 이담농악 보존회를 활성화 시키면서 하계 동계에 걸쳐 이담농악 수련회를 열고 있으며, 송내농악 법고쟁이로 활동하셨던 故장병우 선생님을 이담농악보존회 고문으로 모시고, 故장병우 선생님께서 이담농악보존회 부회장 김경수에게 고증과 함께 원형을 복원, 재현하여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 시킬수 있도록 전승하는데 힘쓰고 있다. 또한 이담농악은 옛 부터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의 유례를 따와 나라사랑의 염원을 담아 태극상모를 국내에서 쓰는 것이 국내 유일한 특징이다. 이담농악은 2017년 향토문화재인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지정과 더불어 김경수 보유자를 주축으로 한국 전통예술의 계승 발전과 지속적인 무대화 작업을 통해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총 12개의 전국 지부로 운영되고 있으며, 약 12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이담농악의 전승과 개발에 힘쓰고 있다.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주요 연혁 1994년 이담농악놀이 발굴& 재현 전국대회 참가 2016년 7월 국악협회 동두천시지부 찾아가는 우 리문화 찬조출연 2016년 8월 동두천시 제2회 어화둥둥 오작교축제 축하공연 2016년 8월 동두천민요보존회 백중 상머슴놀이 초청 공연 2016년 9월 제1회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공연 2016년 9월 우리전통 한마당 공연 2017년 6월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2017년 10월 이담농악정기연주회 2018년 10월 안성바우덕이축제 초청공연 2018년 10월 원주매지농악 대한민국농악대축제 이담농악초청공연 및 시연 2019년 6월 제4회 동두천이담농악 두드림 대축제&제3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2020년 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2021년 제5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개최 2022년 제6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개최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수상이력 2019년 제7회 부안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국회의장상) 2019년 제21회 서산전국농악명인경연대회 명인부 단체부문 대상 (국회의장상) 2019년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대회 농악부 장원 (국무총리상) 2019년 제1회 난계풍물경연대회 단체부문 대상 (충청북도지사상) 2020년 제6회 계양산국악제 전국대회 풍물부문 대상 (인천광역시장상) 2020년 제19회 평택전국웃다리농악경연대회 농악부문 종합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21년 2021대한민국 예술축전 국악부문 대상, 종합부문 최우수상 (동두천국악예술단) * 대회에 문화재 단체는 못나가서 산하단체로 나감 2022년 제30회 임방울국악제 농악일반부 대상 (국회의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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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에도 '동두천아리랑'이 있다이병일/전 사할린한국교육원장 나는 교직 생활 중 12년을 왕십리 근처 세군데 학교에서 보냈다. 그리고 장학사로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또 2년 근무했다. 그러한 인연이었을까.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다. 지난주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개최한 양주에 영주귀국하신 사할린 동포와 함께한 아리랑학교 및 위문공연에 이어 25일 개최된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회장 이혜솔)의 초청으로 구한말 재야학자 매천 황현이 남긴 매천야록의 '아리랑을 사랑한 명성후'라는 부분을 재현하는 상황에서 고종황제 역활을 맡게 되었다. 난생 처음 곤룡포를 입고 임금님이 되어 황후와 함께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다. (오늘 서울 도성 밖 동쪽 십리에 유람을 나선 임금이 되어 명성황후와 함께 무대에서 백성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잠시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아리랑 인연은 올해 3월까지 사할린한국교육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에서 기증한 공연용 한복들을 받아 사할린아리랑무용단에 전달해 드리면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아리랑연합회 주관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는 사할린아리랑제, 사할린 방문과 관련하여 사할린아리랑추진단 기미양 단장과의 인연도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요청으로 동두천아리랑제 무대에 섰다. 특히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레파토리 '사할린아리랑'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오늘 발표되는 동두천아리랑은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8년 전부터 발굴하여 복원한 아리랑이다.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전래되고 있는 토속민요 '이담어러리'이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 유은서)가 주관하는 동두천아리랑제는 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지역 다양한 쟝르의 국악인 단체와 타 지역 아리랑보존회의 공연들이 어우러져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농악대의 길놀이와 지신밟기로 시작한 무대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와 함께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안성아리랑보존회 및 여러 단체의 다채로운 공연과 노동요 합창, 창작무용, 변검과 인형극, 가요 등이 잘 어우러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수이북 경기지역 아리랑을 대표하는 아리랑축제로 발전 및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동두천아리랑제에서 발표한 동두천아리랑 사설에는 지역성과 역사성이 녹아있다. 주제가 확실한 축제였다고 본다. 또한 지역 공동체 간의 협력이 두드러진 '공동체의 노래'로 우뚝 서리라고 본다. 성황리에 축제를 마치고 동두천을 대변하는 대표음식 1호 부대찌개로 저녁식사 뒷풀이를 하면서 지난 1월에 사할린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에 전달한 이담농악의 '태극상모' 이야기를 꺼냈다 동두천 공연 관계자 분들이 동두천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과 사할린한국교육원장이던 나와의 인연을 상기하였다. 스쳐간 인연 조차도 시간을 이리 저리 돌다가 언젠가 손을 잡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아리랑축제에 참여하여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알리는 일에 기여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산의 노래! 사할린아리랑의 슬픈 혼백의 역할도 해내고 싶다. 슬픈 틈새의 섬! 눈물의 섬! 사할린에서 3년을 살아온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한국과의 문화교류가 끊겨지자 나는 비전문가로서 사할린에서 동포들에게 탈춤과 아리랑, 소고춤을 배워주고 무대에서 발표까지 수행했다. 작년에는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에서 최고 대상을 받은 사할린한국교육원생 김경순 여사(73세)의 시 '눈물의 섬, 사할린'을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하여 음반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 김여사가 '칠곡산' 선율에 가사를 입혀서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국에서 작업을 해서 사할린에 가서 보내 드렸다. 나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가 녹음이 된 것이다. 평소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면서 한국어 교육을 하는 편이라서 부탁을 하신 것이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표현한 사할린아리랑의 보급을 통해 동포애를 나누고 싶다. 퇴직후 나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남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평생 국가에서 받은 혜택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 우선 아리랑의 역사와 맞물린 가사들도 이해하고 명료하게 가슴에 담아야겠다. 민중들이 입었던 무명 바지 저고리 한복부터 준비해야겠다. 코로나로 인해 사할린에서 동포애를 충분히 나누고 오지 못한 나의 새로운 임무와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귀한 참여의 기회를 내주신 여러 관계자 분들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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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아리랑제’, 가능성 확인되었다‘제2회 동두천아리랑제’가 지난 25일 오후 5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호국보훈의 달에 마련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하는 동두천아리랑제이다. 토속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8수,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 10수.... 2곡이 발표 되었다. 동두천에는 전래되는 어러리(아라리)와 본조아리랑 선율이 불려진 것이다. 이 아리랑을 유은서 회장이 아리랑학회 자문을 받고 현지 답사를 병행하여 발굴하고 복원하여 동두천 시민들에게 지난해 제1회 동두천아리랑제에서 알렸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이후 유은서 회장은 아리랑학회에서 동두천에도 아라리가 불려졌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서 발굴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회장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30여 년간 국악 활동을 하면서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불려지는 포천어러리, 연천어러리(아라리) 등에 주목했다. 이후 '경기아리랑에 관한 연구'로 국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동두천 관내 많은 경로당을 찾아가며 귀담아 들었던 아라리를 정리하였고, 8년 전 동두천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담이라는 옛 지명이 담긴 이담어러리 30수를 찾았다.이렇게 동두천에도 향토민요인 이담어러리타령과 아리랑이 채록되었다. 현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에서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전수되고 있다. 이담어러리타령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넘겨주게 올라가는 신감사야 내려오는 구감사야 구관이 명관이라고 말 전하거라 내가 넘어가는 고개는 한 고개라 우리 님 고개는 열두 고개 이담면 흐르는 물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린 날 안고 돌줄 모른다 해는 지는데 갓을 쓰고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거들랑 나 죽는 꼴 보고 가소 앞집의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메러 간다 여보게 총각아 목메러 가지 말고 이내몸 시집간데로 몸살러 오게 아리랑사(史)에서 6.25전쟁과 동두천은 깊은 관계가 있다. 주한 미군 제7사단가 '아리랑', 안흥리 '아리랑다리', 동두천 위안부 모임 '아리랑'이다. 1953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주한 미군 (캠프 케이시)제7사단가가 '아리랑'이다. 특히 동두천 양공주로 불린 위안부들의 모임도 '아리랑'이고, 1964년 3월 10일 준공이 된 주한 미군 제7사단 장병들이 지어준 '아리랑다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다리는 "64년 3월 10일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안흥리에 주한 미 제7사단 장병들이 손수 지었다. 제7사단장 그레이 소장이 양주 군수에게 '아리랑다리'를 지어서 인계했다. 폭 2m, 길이 120m로 미국과 한국의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아리랑다리라고 지었다"(대한뉴스 제 460호)라고 한다. 당시 동두천에서는 2만 6천명이나 되는 주한 미군 제7사단의 단가 아리랑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미군들과 주민들이 만나면 손 붙잡고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출렁거려서 아리랑다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당시 미제 통조림 깡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서 '깡통다리'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속담에도 "사랑받는 아이는 이름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1967년에 '아리랑다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 그런데 1972년 노후한 아리랑다리를 헐고 현재는 새로운 다리를 짓고서 안흥교라는 이름을 부쳤다. 지난 6일 동두천아리랑보존회원들과 함께한 동두천아리랑답사에서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서 관내 역사 유래에 대한 지명이나 시설을 적극 발굴하여 안흥교를 다시 아리랑다리로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아리랑다리를 지어주고 1971년 3월 2만명의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제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전쟁 페허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모였다 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설명하면서.....(주한 미군 제7사단에 3대가 복무한 마이클람부라우 박사(손자) 증언) 당시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들도 입에 파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급작스럽게 자본 집중과 유입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50년 전쟁이후 동두천이야말로 아리랑이 가장 많이 불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군가로 불린 아리랑은 자연스럽게 미군들과 위안부들에 의해 불려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 뮤직션들이 아리랑 음반을 발매하고, 미국 동포들까지도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불렀다. 지금도 6월 보훈의 달 뉴스에서 한국을 다시 찾는 미군 참전용사들은 의례적으로 당시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은서 회장은 "새로 작창한 동두천아리랑에는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반 강제동원이나 속여서 끌려온 어린 여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들의 한을 아리랑으로 정화하고 치유하시기를 바라며...."라고 설명하면서 어느새 울컥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함께 눈물이 고였다. 작년에서부터 그분들을 무대에 모시려고 수차례 청을 드렸는데 아직까지는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세상인데...아직까지 그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존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오늘을 동두천아리랑제 개최일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다. 식전행사로 풍물패 밝달이 지신밟기와 풍악을 울려 신명과 흥을 올렸다. 이어 동두천에서 전래되고 있는 향토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이 첫 막을 열었다. 동두천아리랑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낭군 먼동이 트면/모랫말가고요 아낙네들 신천물/빨래터에서 놀고요 저기가는 기차는/검은연기만 나고 이내가슴 타는데도/검은연기가 나네 동산올라 구경하니/길가는행인왜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놀다가지못하고 고추당추 맵다해도/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겠네 영죽겠네/이내시집은못살겠네 자재암 풍경소리는/ 바람따라 울리고 소요산 공주봉에는/ 바람소리 좋구요 만경창파방을삼고/연화수다가 옷을입고 이리떠도 둘이나둥둥/저리떠도 둘이쌍쌍 꽃이야 곱다마는/가지 높아서 못꺾었나 꽃은 꺾어/머리에 꽂고/잎은흝어다 입에물고 미군부대 앞마당에는/민들레꽃 고운데 꽃답던 이내청춘/어느새 시들어졌네 아리랑다리는 깡통강통/깡통다리라네 아리랑다리는 출렁출렁/출렁다리라네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해 동안 갈고 닦은 가량을 펼쳤다. 2019년 함양산삼엑스포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황석산아리랑'(작곡:양평수, 소리:유은서)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무용 '살풀이'(이해영예술단), 변검, 동동구루무(송해문화예술진흥회), 한국무용 '강원도아리랑'(늘춤무용단), 인형극 (정승재)이 펼쳐졌다. 이어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과 이병일(특별회원), 회원들이 소극으로 꾸며서 배역을 맡고 들려준 왕십리아리랑과 사할린아리랑을 생생한 감동으로 선사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안성경서도잡가 보유자)과 회원들이 1911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안성아리랑을 선사했다. 조명숙 명인은 안성권번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70 평생 노래만 불렀다. 뛰어난 공력으로 무대를 신명나고 신나게 만들어서 초청 단체 중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관객으로 오신 귀명창들에게 전화가 왔다. '귀한 소리 들었다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서울경기 지역과 사할린에서 향유하고 있는 아리랑들을 선보였다. 안성아리랑, 동두천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총 10개 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회 김경수 지회장,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 동두천여성단체협의회 윤한옥 회장, 동두천농업협동조합 목현균 조합장, 동두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형남선 센터장,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회장,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이무성 화백, (주)국악신문 관계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등 3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시민들에게 "동두천아리랑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인자"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김승호 회장은 "이제 두 돐을 넘은 동두천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역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온 김경수 동두천국악협회장의 배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두천 전통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김경수 지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었지만 동두천 지역 아리랑의 발굴과 복원작업을 통해 동두천의 역사성을 '동두천아리랑'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함께 향토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서 지역문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비영리 문화단체다. 또한 아리랑 3대 정신(저항, 대동, 상생)을 계승한다. 지난 12월 등재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동두천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유은서 회장은 "이번 동두전아리랑제를 위해 동두천아리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리랑답사를 회원들과 수행하면서 더욱 아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년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다듬어서 소극으로 동두천아리랑을 올려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고 동두천시, 동두천시의회,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주)국악신문, 동두천예총,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동두천농업협동조합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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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 토요상설무대 특별전, 명인명무전2023년 6월24일 <토요일 14:00> • 장 소 : 천안박물관 실내공연장 • 공 연 내 용 : 2023 천안삼거리 토요상설무대 특별기획 "客反爲主”(객반위주) ‘객이 주인이 되어 한판 노닐다.’ • 예 술 감 독 : 서한우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예술감독) • 연 출 : 김경수 (동두천 이담농악단 예술감독) • 공연제작기획 : 조규식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수석단원) • 출 연 : 상공놀이_임웅수, 고창소고춤_김영희, 김오채류설장고_김동호, 진쇠춤_김기화, 한량무_박종필, 남도소고춤_김평호 • 주최 및 주관 : 천안시 /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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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한민국민족예술축제 '농악명인전'......'.K-농악' 도약대한민국농악연합회(이사장:임웅수)가 인천시 국악전용극장 잔치마당에서 제2회 대한민국민족예술대축제 농악명인전을 26일 개최한다. 2015년 결속된 대한민국농악연합회가 창립기념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을 널리 알리고 전수하기 위해서, 나아가 'K-농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로써 전국 농악보존단체가 자비를 모아 자발적으로 농악명인전을 준비했다. 임웅수 이사장은 "K-농악'의 문을 열고자 합니다. 오늘날 세계인을 감동시킨 '한류'의 출발은 바로 전통문화입니다. 올해에도 대한민국 민족예술축제,농악명인전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이 땅에는 마을 사람들이 두레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은 두레 정신을 삶의 지혜로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은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여 왔고, 세대와 세대는 물론 지역과 지역를 이어주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농악은 전통사회 공동체 문화를 대표하는 민속종합예술로써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전국 농악단체와 농악인들은 2018년 11월 27일을 ‘농악인의 날’로 지정하여 잊혀져가는 농악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경수 단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 여는 두번째 농악명인전 무대는 '전통'을 찾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이사회와 각 지역 단체가 1차, 2차, 선정하여 최종 연희자 8명을 무대에 올렸다. 평생 농악을 생업으로 30여 년 전수 해오신 기량이 높은 명인으로 구성되었다. 농악 장르 중 개인적 예능을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을 선정했다. 그런만큼 무대에서 개인의 특성이 집중 되도록 연출했다. 개인적 기량을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객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은 지역별 특성을 나타내는 장르가 바로 브랜딩과 연동되는 무대가 되어서 기대가 된다. 전설적 인물 안성 남사당바우덕이 계보를 잇는 '김기복류 쇠춤'은 고유한 신명을 선사할 것이다. 널리 알려진 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는 양손에 채를 잡고 북소리와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춤사위를 선사하는 역동적인 진도북춤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농악은 지역마다 맛이 다른데 그 맛의 비결은 그 지역의 자연 경관을 닮았다. 농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지역의 전승행사와 자연적 환경 여건에 따라 가락과 연주형태가 변형되어 왔다. 크게 경기·충청도의 웃다리농악, 경상도의 영남농악, 강원도의 영동농악, 전라도 서쪽 평야지대의 호남우도농악과 동쪽 산간지대의 호남좌도농악으로 구분된다. 호남우도는 평야지대이므로 굿거리 같은 맛에 다양한 가락이 있고, 호남좌도는 산간지역이므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다. 경상도는 빠름과 동시에 북이 잘 발달했고, 강원도는 경상도보다 더 산간이 높은지라 더 담백하고 빠르고 격렬한 맛이 있다. 그리고 경기·충청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 가락이 두마치가 더 많고 평탄한 맛을 준다. 웃다리농악이라 일컫는 경기·충청 일대의 농악은 상쇠의 기능이 우세하여 꽹과리가 중심이 되고, 호남 농악은 장고가, 영남농악은 북이 중심이 되어 연주된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 우리 전통문화의 멋과 맛을 이번 농악명인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격조 있는 무대가 되리라고 본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담보한 이번 농악명인전에서 명인들이 펼치는 'K-농악'의 진수를 한자리에서 징하게 맛볼 수 있다. 복성수의 '개꼬리 채상 소고놀이' '소고춤'은 계통별로 농악계 소고춤, 기방계 소고춤, 선소리계 소고춤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복성수 소고춤'은 대전농악을 기반으로 한 채상소고와 고깔소고춤으로 구별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개꼬리 채상소고놀이' 춤사위가 선사된다. (이보름/쇠, 강유진/ 징, 이지희/장구, 복권민/북, 하은비/태평소) 오승재의 '김동언류 설장구' 우도농악의 꽃인 '설장구'로 김오채 선생에서 김동언 선생으로 이어진 설장구이다. 전남무형문화재 '우도농악' 보유자의 '김동언류 설장고'에 김오채 선생의 가락을 오승재의 장구로 재해석하여 연행한다.(김호석/쇠 이정현/북) 임성준 명인의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은 1800년대 후반 이모질에 의해 집대성되었으며, 이후 김양술, 강대륙,강대홍, 유만종, 박용하, 정창환 등에 의해 발전 전승되어 지금에 전해지고 있다. 덩더쿵, 굿거리, 반굿거리, 된굿거리의 장단을 바탕으로 소고놀음과 다양한 걸음이 어우러지는데 특히 굿거리의 맺이나 꾸리북맺이는 고창 고깔소고춤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볼거리이다.(이승주/쇠, 구경모/장구, 구자연/태평소) 성광우의 '김기복류 쇠놀음' '김기복류 쇠놀음'은 경기도무형문화재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예능보유자 故 김기복 선생의 쇠가락과 종이북상놀음으로 구성된 경기도 안성 특유의 웃다리 쇠놀음이다.(문철진/쇠, 김요한/징, 김효정/장구, 박대권/ 북, 이상철/ 태평소) 김병천 명인의 '진도북놀이' '진도북놀이'는 북을 어깨에 메고 허리에 고정한 후 양손에 채를 쥐고 장단과 춤을 추는 국내 유일한 양북춤이다. 1987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류파별로 전승되고 있다. 오늘 작품은 장성천류 북놀이를 각색하여 개인놀이로 만들었으며, 가락이 다양하고 춤사위는 투박함과 세련미를 함께 한다.(김지원/쇠, 박미림/장구, 이수민/징) 이윤구 명인의 '채상북놀이' '채상북놀이'는 농악판에서 전승되어 오는 전통 북놀이 중에서 단연 최고의 백미로 손꼽히는 눈대목들을 시나위 감성으로 창안하여 무대화시킨 작품이다. 호남, 영남, 경기충청 가락을 한과 멋, 흥으로 집약하여 정교한 버슴새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조성규/쇠, 유근/징, 인승현/장구, 지경태/북, 구자연/태평소) 서한우 명인의 '설장구춤' '호남우도농악'에서 유래하여 농악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장구잽이가 다채로운 가락과 춤사위를 통하여 예술성을 보여주는 놀이를 서한우 명인이 재구성하였다. 섬세한 가락과 연주, 발짓의 돋음새, 디딤새를 통한 참신한 호흡이 묻어나는 춤사위와 함께 어우러져 무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서광식/쇠, 임재태/장구, 구자연/태평소) 손영만 명인의 '김천금릉빗내농악 상쇠놀음'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된 김천금릉빗내농악의 특징을 잘 나타낸 상쇠놀음이다. 전국 대부분의 농악이 농사굿의 성격이 짙은 반면, 김천금릉빗내농악은 전쟁에서 유래된 진굿으로, 가락이 빠르고 격렬한 것이 특징이다.(류현수/장구, 우선빈/북)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전국 가입단체 경기도:광명농악보존회.김포농악보존회.이담농악보존회.양주농악보존회.안산고잔농악보존회.서한우버꾸춤보존회. 인천광역시: 강화열두가락농악보존회.인천검단보리밭일소리보존회.인천서곶들노래보존회.미추홀농악보존회.풍물패잔치마당 충청남도: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공주농악보존회 충청북도:청주농악보존회 강원도:원주매지농악보존회.춘천농악보존회. 평창둔천평농악보존회 경상북도:김천빗내농악보존회.구미농악보존회.경산중방농악보존회.욱수농악보존회.천왕메기(비산농악)보존회 경상남도:함안화천농악보존회.김해농악보존회.함안농요보존회. 전라남도:진도소포걸군농악보존회.화순한천농악보존회.곡성중동농악보존회.우도농악보존회.담양민속보존회. 전라북도:이리농악보존회.정읍농악보존회.김제농악보존회.고창농악보존회.남원농악보존회 연락처는 대한민국농악연합회 경기도 광명시 철망산로42 광명문화원 농악사무실 (전화 02-899-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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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사암리어린이농악단을 꿈꾼다지난달 춘천사암리농악회에서 주관한 '제4회 사암리공지어샘굿'이 지역 주민의 참여와 성원으로 성공적으로 마치었다. 공지어 전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와 마을 곳곳에 공지어를 줄에 걸어두는 설치미술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국악신문에서 '춘천 사암리 샘굿' 행사 기사를 내보내고 나서 이 행사를 주관한 춘천사암리농악단 오선주 단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왜냐하면 잊혀져 가는 마을제의 복원과 샘굿의 주제를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라는 신성한 대상을 구현해 내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을 담보한 공지어는 샘에서 사는 주인장이고, 물의 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공지어에게 소원도 빌어본다. 특히 샘굿에서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공지어를 표상하는 퍼포먼스까지 더한 콜라보는 마치 한장의 그림처럼 각인이 되어버렸다. 마을제 샘굿의 전승주체는 마을사람들과 사암리농악보존회이다. 특히 여성이 상쇠라는 농악단이라서 더욱 오선주 단장을 만나보고 싶었다. Q. 안녕하세요. 오선주 단장님, 서울 출생이신 분이 어떤 계기로 전통을 만나서 '농악'을 택하고 오늘까지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를 이끌어 오셨는지요. A.광화문에 있던 경기여자고등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소고춤'을 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때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봉산탈춤 김선봉선생님께 탈춤을 배우면서 즐겁고 낭만에 젖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고, 1996년 대학로에서 풍물 동아리 '굿누리'를 결성해 활동하다보니, 서울에서 소도예술단 상쇠로 활동하고, 2006년 정철기 선생의 '부포놀음' 장르까지 욕심이 나서 찾아가서 부포 돌리기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2000년부터 마임이스트인 유진규씨와 함께 해마다 프랑스 미모스축제.영국 런던마임축제.독일 하노버엑스포,벨기에 하멜축제 등에 참가하여 상술놀이반주와 상포판굿 공연을 하면서 문화교류 민간외교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이후 남편을 따라서 춘천에 정착하게 되면서, 2005년부터는 춘천문화원에서 사물놀이와 농악을 지도하게 되었으며, 2009년 중국에서, 우리 한반도에서 발생한 농악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것을 보고 크게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1년 문화원에서 사암리농악학술조사를 위해 사암리에 파견되면서, 나중에는 사암리에 이주하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고, '사암리 농악'과 반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Q. 본업인 농악보다도 '남사당놀이'를 먼저 배우게된 계기는, 남사당놀이 전수는 누구에게 받으셨나요? A. 풍물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있던 차에 이화여대 다니던 20대 초 시절,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님이 기획하신 '발탈' 공연을 너무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생생해서 가슴에 담고 있다가....풍물과 인형극이 어우러지는 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남사당놀이' 보유자이신 고 박용태(1944년)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욕심이 나서 다른 장르의 농악도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Q. '꼭뚜각시놀음'은 누구에게 전수받으셨나요. A. 고 박용택 선생님께 '꼭뚜각시놀음'을 전수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인형극 연습은 많이 못하고 풍물 반주에 관심이 더 있어서, 남사당놀이 중 농악 풍물공부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Q. '대전웃다리농악'도 사사했는데 스승의 계보를 밝히신다면? A.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웃다리농악'을 인간문화재이신 송덕수'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여 전수자가 되었습니다. 전수조교 김은빈 선생님과 김경수 사무장님께서 보조 강사로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해마다 '농악전수 여름캠프'에 참여해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Q. '사물놀이'를 언제부터 배웠는지요. A.사물놀이 공연은 1978년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매료되었으며, 직접 배우게 된건 1992년 춘천 사회문화연구회 강습을 통해서이고, 1993년에는 ‘우리소리' 풍물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96년 여성풍물패 '굿누리'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공연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소리에서 활동하던 분들과의 인연은 사암리농악단까지 어어지고 있습니다. 오단장은 여고시절 소고춤을 접하고 대학시절 발탈을 보고 영감을 받고나서, 고 김용택 선생님을 찾아가 '꼭두각시놀음'에 접하게 되었고, 거기서 남사당놀이를 배우려다가 농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Q. 농악을 하시는 분들이 탈춤. 회심곡, 비나리 같은 장르도 배우시는데. 오단장님은 민속문화, 즉 전통예술 장르 중 더 배우고 싶은 장르는 무엇인가요? A. 저희 동네에 강원도 도청 신청사가 신축되는데, 전통방식으로 부르는 토속소리 '지경다지기'를 배워서 농악단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 마을 공동체사업중 하나인 '농요배우기' 시간에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경다지기소리'를 전수받을 계획입니다. 마을제 '샘굿'과 사암리농악보존회 Q. 사암리농악보존회를 결성하게된 계기 A. 2013년 춘천문화원학술대회에서 중국에서 2009년 유네스코에 등재돼 중국 조선 동포들이 향유하는 '농악무'의 뿌리가 "1927년 춘천 사암리 주민들이 가난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해 영벽에 자리잡게 되었고, 낮선 이국땅에서 배고품과 추위를 달래기 위해 영벽바위 밑에서 풍물을 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랬다"는 길림신문에 난 기사를 바탕으로 자료 수집을 위해 사암리농악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되었고 그 당시 생존해 계시던 97세 상쇠 최정하 옹을 만나 많은 고증을 통해 최상쇠님이 중국으로 이주해 간 선조들이 춘천에서 농악할 때, 무등을 타셨다는 사실, 또한 송봉규, 송학규, 김봉렬, 신현수님, 등 1950년대에 농악을 하셨던 어르신들의 고증도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파도파도 끝이 없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물지도가 사임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인류문화유산을 발굴해 가는 체계적인 과정을 이어 나가고자 2015년 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Q. 농악대를 이끄는 여성 상쇠로서의 자부심이 어떤가요? A. 딱히 괭과리 소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1992년 취미생활로 참가한 '춘천사회문화연구회'에서 그나마 빨리 장단의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상쇠를 맡게된 후로는 계속 제 역할이 꽹과리를 맡게 되어 자연스럽게 꽹과리 인생이 풍물인생이 된듯 합니다. Q. 1999년 제1회 강원도 사물놀이 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신 감동? A. 대상을 타기는 했는데 1회로 끝난 의미없는 대회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제 이력에서 삭제하겠습니다. 수상해서 기뻤던 것은 2010년 강원도 문화원 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으로 그 당시만해도 일반인이 상모돌리면서 연주하는팀이 거의 없었던 시기인데.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 전원이 상모를 돌리며 연주하여 관객들이 깜짝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2017년 전국웃다리경연대회에서도 제가 지도하는 춘주농악팀이 차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Q. 2010년 전국농어민 풍물경연대회 강원도 대표 참가하셨는데, A. 춘천문화원에서 농악을 지도하다보니 전국대회에 까지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고 하도 긴장을 해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보다는 전국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보며 흥미로웠고 남산한옥마을 구경하며 즐거워 했던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Q. 평창올림픽 때 어찌해서 참가하게 되었는지요? A. 평창문화올림픽 연출하시는 백형민 선생님과의 인연이 있어 문화버스킹 공연 총3회 참가하는, 저에게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Q. 작년 예술의 전당 유진규 마임 50주년 기념 헌정공연으로 농악을 선보였는데, 궁금합니다. A. 유진규씨와는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맡았던 2002년부터 프랑스 페리그 미모스마임축제, 영국 런던마임축제, 독일하노버엑스포, 네덜란드 하멜축제, 벨기에 마임축제,일본 도야마 마임축제, 홍콩 프린지 초청공연, 중국 상하이국제연극제 등에 참가했던 작품 "빈손”의 사물놀이 반주자로 오랜기간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임인생 50주년기념 헌정공연을 서울 예술의 전당과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하여 초청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런 뜻깊은 공연을 마치고 커텐콜을 할 때, 남편이 뜬금없이 관객을 향해 그동안 내조를 해 준 저를 언급해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한평생 예술가라는 외길 인생을 걸어온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난관들이 이상하게도 한번에 다 보상받는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Q. 2007년 풍물부 장원을 받으셨는데, 사진이 있나요? A.아쉽게도 그 당시 찍은 사진은 없고, 그 다음해 포스터에는 전해년도 장원 수상하는 사진이 들어가는 관습이 있어서, 제가 들어간 팜플렛 사진을 찾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Q. 해외공연 중 기억에 남는 장소는 A. 해외공연중에는 그저 비행기 타고 가서 공연장 주변에 숙소를 구하고 공연장 리허설, 그리고 공연후 귀국 등 바쁜 여행일정이었는데, 딱 한번 프랑스미모스축제 참가 후에는 공연을 마친 후 거의 한달간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변,국가를 자유롭게 여행 다닌 기억이 제일 추억에 남습니다. 마침 축제기간과 겹쳐서 민속공연도 볼 수 있었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국적불문하고 모두 통한다는 거죠. 외국어를 서로 몰라서 말이 안 통해도 예술은 통한다는거죠.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국민들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Q. 존경하는 국악인은 누구신가요? A. 농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안성바우덕이' 상쇠입니다. 19세기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시 전국에서 강제동원된 젊은이들이 고향이 그리워서 밤마다 궁에 불을 지르자. 대원군이 이들을 위로하게 위해 전국 소리패 광대패들을 서울로 올려서 전국 단위 콘서트를 벌렸죠. 거기서 최고상으로 옥관자를 받은 바우덕이입니다. A. 전통이란 무게를 30여 년 동안 가지고 오시면서 가볍지는 않은 시절을 보내셨는데.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은 언제이셨는지요. Q. 의무기록을 보니 2010년에 뇌수막종 수술 받았네요. 너무 어지러워서 하던 농악 전수 공부를 더 이상 못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이후에 이 전통놀이 농악대가 저를 살려낸 거지요. 우울하다가도 벽에 걸린 상모를 보면 농악이 생각나고. 그러면 몸을 추수려서 밖에 나가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은 완치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어요. 전환점이 된거지요. 다행인건 그 덕분에 우리 마을에 더 애정을 갖고 집중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이 산다" Q. 세계적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과 이번 공지어축제를 같이 해보시고, 유진규 선생과 앞으로 '농악+퍼포먼스' 콜라보 작품 구상을 하시는지요. A.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동내면 '대룡산 공지어놀이'에서 유진규씨가 총연출, 제가 기획을 맡았습니다. 사암리 대룡산과 공지천 공지어를 잇는 스토리텔링으로 첫번째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샘굿으로 제의적 축제를 벌였고, 두번째는 동내면민이 함께하는 마을축제와 소리꾼을 찾는 경연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몸짓으로 제의적 행위를 할 때에 원초적 소리도 있어야지요. 반주가 곁드려져야 더욱 효과적이기에 마임과 풍물은 계속 함께 공동작업을 할겁니다. Q. 내년 제5회 샘굿에는 올해와는 좀 더 확장된 새로운 장르를 기대해도 될까요. A. 내년에는 퇴계선생이 공지천에 볏짚을 뿌리자 물고기로 변했다는 전설을 근간으로 공지어 제작에 좀 더 신비한 비주얼을 가미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공지어 설화'를 소재로 한 마술도 축제 마당에 끌어오려 합니다. Q. 올해 샘굿은 언제 개최되었나요. 공지어 샘굿할 때 부르던 노래 가사는 기억나시나요 A. 첫번째 놀이 대보름맞이 ‘대룡산 샘굿’은 지난달 4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사암리 약물샘 (원창고개길 96-1)과 사암2리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신비한 물고기 ’공지어‘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공지천 곰짓내는 사암리 대룡산에서 발원합니다. 가사는 뚫으세 뚫으세 뻥뻥 뚫으세 수정같이 맑은 샘물 뻥뻥 뚫으세 대룡산 하늘기운 맑은물로 콸콸 솟아 곰짓내로 흘러흘러 공지어가 춤을 추니 올해도 풍년이요 내년에도 대풍일세 Q. 올해 제3회 샘굿에서 택한 주제는 '전설의 물고기 공지어'인데 어떤 역사적/지역적 배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신건가요. A. 춘천엔 퇴계 이황선생의 공지어 설화가 있고, 공지어가 살고 있는 곳이 공지천이며 공지천의 원류중 한곳으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암리 약물샘에서 깨끗한 물과 대기순환을 기원하는 '생명굿'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Q. 내년 사암리 샘굿의 주제나 슬로건에 대해, 기획의도에 대해 구상해 놓으신 것이 있나요. A.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살아야 인간도 산다" 즉,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석유보다도 물이 더 비싼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평소 늘 생각한 이 말이 사암리 공지어전설과 맞아지고, 실제 전해지는 전설의 장소가 있습니다. 사암리 주민들이 지켜나갈 책임이고 과제라고 봅니다. Q. 이번 제3회 샘굿 개최에서 성과는 A.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마을사람들과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볏집으로 공지어를 999마리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겨운 시간들을 공유했습니다. 이쁜 공지어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마을 곳곳에 매달면서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마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Q. 언제나 마을제 샘굿을 함께 하시는 남편, 동반자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예술가 유진규 소개하신다면? A. 1981년 국악 관련 행사에서 만나 결혼을 해서 40년이 넘게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누구에게나 두절 두절 말이 없는 편이시고, 공부를 많이 하십니다. 시사, 철학, 다큐 등...늘 그냥 지나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 땅, 물... 등 발밑에 있는 개미까지.....최근에는 청개구리 집을 만들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말한 것(작품)은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믿고 따르는 국내외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진규 하면 '신뢰' 그 자체입니다. 춘천마임축제가 런던 마임축제, 프랑스 미모스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로 정착하는 데는 유진규 선생의 신뢰가 모든 사람들을 집결하게 했습니다. Q. 단장님, 춘천사암리농악보존회의 미래를 위한 계획은 A. 사암리 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살러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귀촌을 하고, 어린이들이 태어나고, 학교종이 울리는 것입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암리농악보존회입니다. 그러면 힘이 나서 더 북을 치고, 어린 계승자들도 이어질거고, 욕심을 낸다면 향토문화재가 되어서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 지속가능성을 확고히 하는 겁니다. Q. 단장님, 사암리농악보존회 리더로서 꿈이 있으시다면? A. 어린이농악단을 결성하여 사암리농악을 전승하려는게 제 목표입니다 올해부터 어린이농악단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춘천을 대표하는 어린이농악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조선족의 농악무'를 전승하고 있는 '왕청현농악단'과의 교류를 계속 진행할 겁니다. 3년간 코로나로 서로 오고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김명춘 단장과 오늘도 통화해서 서로 교류하길 원한다고 확인했습니다. 올해 9.9절 조선자치족 행사에도 참가할 계획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두 부부 중 한 분은 안정된 직장이나 사업장을 운영할법도 한데, 모두 예술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오선주 단장이 자식들을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는 20년 동안만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평생 예술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그냥 웃음뿐이다. 내년 제5회 사암리 공지어 샘굿이 기대된다. 전설 속의 공지어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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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예술인과 동포애를 나누다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사할린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한국예술과장 신율리야 선생님에게 동두천시이담농악단(김경수 단장)이 기증한 '이담농악'의 상징인 태극상모를 전달했다. 지난 달 비자연장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병일 원장이 국악신문과 이담농악단이 기증한 한복, 태극상모 등을 사할린 예술인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현재 사할린 동포들과의 교류가 3년간 미루어진 실정에서 동포애를 나누는 뜻깊은 모습이다. 한편 이병일 원장은 2월 중순이 지나면 사할린한국교육원 책임자로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동안 이원장은 사할린 교민들의 한국 내 민원창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이원장은 지난해 초부터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교민들에게 교습과 무대를 통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한국의 탈춤'을 전수해 주고 있다. 또한 세시명절에는 세배하는법, 윷놀이, 김치만들기, 막걸리빚기와 트롯트 등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 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교육원생 중 사할린 동포 2세 김경순(72세) 여사가 2022년 제24회 'KBS한민족체험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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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상모와 한복 기증식, 사할린 예술인들에게11일 오후 4시 사할린 교민 청소년이 중심으로 구성된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의 상징인 태극상모 1점과 한복 5벌을 기증하는 모임이 있었다. 안국동 (주)국악신문 주필실에서 사할린 한국어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퇴임을 앞두고 귀국, 틈을 내서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에게서 농악의 상징인 상모 1점과 (주)국악신문(대표이사 기미양)에서 한복 5벌을 기증받았다.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 보유자인 김경수 단장은 "하늘길이 열리면 사할린 청소년들에게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진수를 전수해주고 싶다"라고 전했다. 사할린 에트노스아동예술학교 학생들은 2012년부터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매년 방학에는 국립남도국악원의 해외 동포체험 프로그램인 '모국체험' 연수 참여를 통해서 국악 종목 전반에 걸친 수업을 받았는데, 3년간 코로나로 입국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병일 원장을 통해 기증을 받는 이는 사할린 교민 예술단 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단장 등으로 ‘코로나19’로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6년부터 매년 사할린 교민 예술단에게 한복 등을 지원해 온 기미양 대표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예전처럼 서로 오고가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마음만은 오고가는 사이” 라며 "작은 성의나마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에 이병일 원장은 "따뜻한 동포애가 담긴 마음을 그대로 전해드리겠다"라고 하였다. 한편 이병일 원장은 사할린한국교육원 책임자로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동안 이병일 원장은 사할린 교민들의 한국 내 민원창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이번에도 사할린 동포 박영자 단장이 전해준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건립(정선) 성금을 국악신문사에 전달해주었다. 사할린3세 이미르 씨의 고사리 나물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배를 타고 온 동포애가 담긴 마음을 받았다. 이원장은 작년 초부터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교민들에게 '탈춤'을 전수해주고 있다. 또한 세시명절에는 세배하는법, 윷놀이, 김치만들기, 막걸리빚기와 트롯트 등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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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양금과 만난 사물 '노리' 초연19일 오후 7시 동두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동두천시(시장:박형덕)가 주최하고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단장:김경수)이 주관하는 열다섯번째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정기공연이 개최된다. 프로그램에는 '술술탈탈 무탈하다'의 주제로 탈춤(김문경), 반주에는 가야금병창 하태현, 장구 황진하가 첫막을 연다. 두번째 무대는 사물(김경수)과 양금(박은수) 콜라보레이션 ‘노리’, 세번째는 무을농악 쇠놀이(박정철), 네번째는 줄놀음(박회승), 휘날레는 동두천시림합창단(지휘자: 김진수)이 함께한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사물과 양금이 만나서 콜라보레이션으로 연주되는 '노리'가 초연된다. 노리는 경기북부 웃다리 농악 가락에 양금 편성을 더하여 새롭게 작곡해 낸 곡이다. 김경수 음악감독은 "세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의 세계화'를 위해 여러 장르의 음악과 만나서 실험적 음악 제작을 위해 기획했다. 세계적 양금 연주자이며 작곡가 윤은화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이담농악의 대표 가락인 '쩍쩍이-칠채-육채-마당삼채-짝쇠' 가락에 남북한 배합악기 '양금'을 더하여 사물과 양금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해 보았다. 이번 정기공연을 통해 초연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노리'는 이담농악의 대표적인 가락인 칠채를 바탕으로, 이담농악 보유자인 꼭두쇠 김경수의 특색있는 열채 소리와 양금만의 고유한 음색을 결합한 '칠채', 각 악기들의 주고받기 구성에 양금을 포함한 '육채', 상쇠와 부쇠가 이끌어나가는 가락을 양금으로 대체한 '짝쇠' 장단으로 이루어져있다. 연주에는 이담농악단의 곰뱅이쇠인 박은수 연주자가 직접 양금을 사사받고 양금 연주자로 참여하였으며, 김경수 단장과 고양옥 곰뱅이쇠, 김해민 · 최영호 뜬쇠가 사물 연주를 담당하였다.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은 꼭두쇠 김경수(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 보유자)를 주축으로 한국 전통예술의 계승 발전과 지속적인 무대화 작업을 통해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한 공연 전문 단체로 1995년 이담풍물놀이보존회로 활동을 하다 2007년 11월에 동두천시를 대표하는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이 창단되었다. 총 25명의 시립단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외 전통연희 및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문화 사절단으로 일본, 미국, 영국 런던, 캐나다 밴쿠버, 러시아 등 국내외 주요 공연 700여 회를 주도한 경기 북부를 대표하는 농악단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전주대사습놀이 장원(국무총리상), 2022년 임방울 전국농악경연대회 (국회의장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편 김경수 단장은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두천이담농악 전승과 방향'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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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협회 동두천지부, 동두천국악한마당 '5인 5색' 성료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지부장 김경수)가 주관하고 동두천시와 동두천시의회가 후원한 2022년 동두천 국악한마당 ‘5인 5색’ 이 지난 12일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했다.제1부에서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소속 4개 분과 가야금병창분과, 민요분과, 무용분과, 농악분과의 공연과 2부에서는 ‘5인 5색’(김보연, 김정임, 박경남, 방승환, 김병천)의 축하공연이 펼쳐져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흥과 신명을 선사했다. 제1부 첫번째 무대에서 가야금병창분과 분과위원장 박경남의 가야금병창으로 '엉겅퀴야 · 야월삼경' 2곡이 선보였다. 김학영,전연옥,민순이,유정화,박서아,서은채,정귀임이 함께했다. 두번째 무대는 김강호의 해주아리랑에 이어 유은서 민요분과 분과위원장과 회원들과 '노랫가락·풍년가·경복궁타령'을 선보였다. 나영순,심정옥,정귀임,차경순,최차순이 함께했다. 세번째 무대는 양채원 무용분과 분과위원장과 회원들의 '영남교방무'가 펼쳐졌다. 장영애,김순숙,임은숙,주숙경,박예숙,김창숙,김선희,정장순,정금희,민경민이 함께했다. 네번째 무대에서는 농악분과 분과위원장 최영호의 '앉은반사물놀이'가 신명을 선사했다. 최영호,고양옥,박은수,황진하,김태형이 함께한다. 제 2부에서는 '5인 5색' 무대가 펼쳐졌다. 첫 무대에서 김보연의 '한 오백년 · 창부타령 · 뱃노래 · 자즌뱃노래'가 펼쳐졌다. 두번째 무대는 김정임의 '교방부채입춤'이 선보였다. 세번째 무대는 박경남의 가야금병창으로 듣는 '방아타령 · 꽃타령'이 펼쳐졌다. 네번째 무대는 방승환의 '호남우도부포놀이'가 선보였다. 다섯번째 무대는 김병천(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18호 보유자)의 '진도북놀이'가 선보였다. 김경수 대회장은 "오늘 가뭄으로 인해 오랫동안 기다렸던 단비가 오는 가운데 개최되는 '동두천국악한마당'에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다가오는 새해 송년맞이로 전통문화의 신명을 선사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는 7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 전통 국악의 계승·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단체로 매년 시민들을 위한 정기 공연 및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문화활동, 국악체험교실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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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동두천 국악한마당 '5인 5색' 펼쳐진다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김경수)가 매년 주최주관하는 '동두천 국악한마당'이 12일 오후 6시 30분에 동두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된다. 전남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 명인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제1부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 4개의 분과에서 준비한 공연이 선보이고, 2부는 '5인 5색'의 공연이 펼쳐진다. 제1부 첫번째 무대에서 가야금병창분과 분과위원장 박경남의 가야금병창으로 '엉겅퀴야 · 야월삼경' 2곡이 선보인다. 김학영,전연옥,민순이,유정화,박서아,서은채,정귀임이 함께한다. '엉겅퀴야'는 1984년 창립한 민요연구회에서 민영 시인의 시에 선율을 붙인 민요곡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홀로 살게 된 여인의 애환을 가야금병창의 소리로 한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게 편곡하여 연주한 곡이다. '야월삼경'은 박귀희 명인이 작곡한 신민요이다. 장단은 중모리장단으로 23시~1시 사이 삼경에 달을 보며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노래이다. 두번째 무대는 민요분과 분과위원장 유은서의 '노랫가락·풍년가·경복궁타령'을 선보인다. 나영순,심정옥,정귀임,차경순,최차순이 함께한다. 이어서 김강호의 해주아리랑이 불려진다. '노랫가락'은 경기 서울을 비롯해서 중부지방에서 많이 부르는 대표적 노래 중 하나이다. '풍년가'는 추수를 끝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악기 장단에 흥을 돋우며 하늘에게 풍년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노래한다. 세번째 무대는 무용분과 분과위원장 양채원의 '영남교방무'가 펼쳐진다. 장영애,김순숙,임은숙,주숙경,박예숙,김창숙,김선희,정장순,정금희,민경민이 함께한다. '영남교방무'는 영남의 덧뵈기 허튼춤을 재정립한 춤이다. 여성적이면서 남성적인 춤사위가 특징이다. 일자사위,활개춤,배기고,어르는 어깨짓과 섬세한 발놀림, 손놀림이 주축을 이루며 장단에 따라 맺고 푸는데, 이때 매 박자마다 악센트가 들어가는 강약과 함께 그 안에서 엇박의 리듬을 만들어 엇 박춤을 추는 것이 독특하다. 네번째 무대에서는 농악분과 분과위원장 최영호의 '앉은반사물놀이'가 신명을 선사한다. 최영호,고양옥,박은수,황진하,김태형이 함께한다. 앉은반 삼도사물놀이는 우리나라 삼도(경기, 호남, 영남)가 가지는 특성을 다채롭게 펼치며 구름, 비, 바람, 벼락에 비유되는 북, 장구, 징, 꽹과리가 이루어내는 조화를 중심으로 짜여진 곡이다. 관객들이 연주자들의 에너지와 우리 전통연희만의 고유의 신명을 받아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하였다. 제 2부에서는 '5인 5색' 무대가 펼쳐진다. 첫 무대에서 김보연의 '한 오백년 · 창부타령 · 뱃노래 · 자즌뱃노래'가 펼쳐진다. '한오백년'은 '정선아리랑'과 함께 강원도 민요의 특징인 메나리 조 토리로 불리는 민요이나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곡으로 구슬프고 애절하다. '창부타령'은 경기민요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경기민요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는 곡으로 진행이 세련되고 흥겹다. 뱃노래, 자즌뱃노래는 경상도 민요로 역동성과 신명이 뛰어나서 휘날레 곡으로 많이 불린다. 두번째 무대는 김정임의 '교방부채입춤'이 펼쳐진다. '교방부채입춤'은 절제미 속에서 교태미와 애절함이 돋보이며 여성스러움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호흡이 특징이다. 첫 박과 중간 박을 강하게 표현하고 강약의 조율이 긴장감을 주는 이 춤은 장단과 장단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또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무대는 박경남의 가야금병창으로 듣는 '방아타령 · 꽃타령'이 펼쳐진다. '방아타령'은 판소리 심청가 중 한 대목으로 심봉사가 황성에 가던 중 방아 찧는 여인을 만나 방아를 찧어주고 밥을 얻어 먹는 대목이다. 꽃타령은 자즌모리 장단의 빠르고 흥겨운 노래로 박귀희 명인의 작곡한 신민요 곡이다. 네번째 무대는 방승환의 '호남우도부포놀이'가 펼쳐진다. 방승환의 '부포놀이'는 호남우도 농악의 부포놀이다. 어려서부터 농악을 시작하고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국립국악원과 서울시무용단을 걸쳐 농악뿐만 아니라 한국전통 춤사위까지 겸비하고 있다. 특히 방승환의 부포놀이 버슴새는 느림의 미학이다. 굿거리의 섬세한 발동작과 몸놀림은 마치 학이 노니는 모습이며, 다채롭고 맺고 푸는 변화무쌍한 구성진 가락과 부포놀음은 여백의 미와 하얀 꽃송이가 하늘거리듯 정·중·동의 멋을 느낄 수 있다. 다섯번째 무대는 김병천의 '진도북놀이'가 선보인다. '진도북놀이'의 특징은 대부분의 북춤이 한 손으로 채를 사용하지만, 진도북춤은 쌍북채를 이용하여 장구와 같이 고정 시켜 춘다. 북을 어께에 메고 허리에 고정한 후 양손에 채를 쥐고 가락과 춤을 추는 '북놀이’(양북춤)이다. 진도북놀이는 1987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 장성천. 박관용. 양태옥 선생이 예능보유자 지정을 받아 지금은 3개의 류파별로 전승하고 있다. 12일 보여주는 작품은 장성천류 북놀이를 각색하여 개인놀이로 만들었으며, 가락이 다양하고 춤사위는 투박함과 세련미를 함께 한다. 북놀이 순서는 이룸굿(난타)으로 시작하여 일체. 이채. 가진일채. 일체 후 삼채로 입장하여 굿거리. 삼채. 동살풀이(당악). 오방진 (새당닥궁). 굿거리. 인사굿으로 맺는다. 장선천류 '진도북놀이'의 계보는 제1대 장성천, 제2대 김길선, 제3대 김병천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 김경수 대회장은 "동두천국악한마당'이 코로나로 인해 3년째 움추리고 있는 국악인의 기운을 새롭게 북돋구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다가오는 새해 송년맞이로 전통문화의 신명을 선사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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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비 정선에 서다, 웅장하게!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5일 오후 4시 정선군.아리랑연합회의 공동주최주관으로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비 건립 제막식이 정선에서 개최되었다. 정선 아우라지 강가에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답게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비가 당당한 자태로 섰다. 제막식 행사는 간명했으나 긴 여운을 주었다. 국내외 40개 지역 아리랑전승단체가 함께 제막식 줄을 잡고 한민족이 아리랑으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정신을 가슴에 되새겼다.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과 '이담농악' 이수자들의 '비나리' 공연을 선보였다. 김경수(장구). 고나윤(꽹과리). 박은수(징). 최영호(꽹과리.비나리) 황진하(북)으로 천지신명께 고하였다. "천개우주 하날이요 지개조추 땅 생길 때 국태민안 법윤전 시화연풍 돈나들고 이씨한양 윤번세 삼각산 기봉하고 봉황이 생겼구나 봉황눌러 대궐짓고 대궐앞에는 육조로다 (다시 악기만 연주) 오양문 하각산에 각도각읍을 마련할제 왕십리 청룡이요 동구만리 백호로다 종남산 안산되고 과천관악산 화산이비쳐 동작강 수구막아 한강수 둘러싸니 여천지 무궁이라 원아는 금여찬데 차일은 사바세계 남선은 부주로다 해동이면 대한민국 우리 오늘 모인 날이 12월 하고 초닷세라 인류문화유산 아리랑비 우뚝 세워 비나이니 길이 길이 세세 년년 아리랑훈풍 세상에날려 아리랑 계승하리로다 아리랑 계승하리로다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아리랑이로세 (합창) 만복이야- 에헤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사랑 나하 어허미 어허미로다 보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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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동두천이담농악' 농악부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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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농악명인전&굿명인전 두번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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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과 굿판, 가을하늘과 놀다!제1회 대한민국민족예술대축제가 21일부터 개최된다. 16명의 내노라는 농악과 굿 종목 명인들이 펼치는 ‘농악과 굿판’이 벌어진다.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이사장 임웅수)와 한예극장(대표 안영일) 공동 주최이다. 농악은 음악이요, 놀이이며,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두레와 품앗이문화로 넉넉함을 이뤄내는 신명의 장이다.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편 가치를 인정받았다. 굿은 노래와 춤의 시원이고 종합예술의 꽃이다. 농악판은 21과 22일 이틀에 걸쳐 판을 벌인다. 첫 날은 전남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보유자 김동언,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 이사장 임웅수, '태평소' 예능보유자 강영구, '사물놀이' 진쇠 명인 이윤구, '한밭소고춤' 복성수 명인, '웃다리농악' 대전광역시무형문화재 제1호 김행덕 명인, 웃다리 붓상놀음 김복만 명인, '채상소고놀이' 길기옥 명인,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6호 ''양주농악' 황상복 보유자 등이 판을 펼친다. 다음 날인 22일은 강원도 무형문화제 제15-1호 '평창둔전평농악' 고완제 보유자, 경상북도 구미 무을지역 양북 명인 박정철, 채상소고놀이 이연호 명인, 동두천 '이담농악' 보유자 김경수, 우금치 쇠잽이 '북상놀이' 정철기 명인, '우도설소고춤' 이수현 명인이 꾸민다. 우리나라 농악의 진수를 맛 보는 기회이다. 굿판은 28~29일 이틀 동안 농사 풍년, 시국 태평을 기원한다. 계양산산신제보존회 박경애 회장을 비롯한 무녀 김지윤, 오경옥 장덕련와 이재광 박수가 악사 최승운(대금), 김흥수(피리), 유재훈(해금)이 맡아 함께 한다.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 송재영 이사장은 축사에서 "농악은 수확의 기쁨과 감사를 표하는 마을 공동체의 뿌리이며 이웃과 나눔의 넉넉함으로, 두레와 품앗이로 마을을 이끄는 철학이였고 그 철학은 흥과 신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멋진 무대에 흠뻑 빠져보시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임웅수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급변하는 문화환경 속에서도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자세로 조상들의 삶의 유산을 재현하고 미래의 세대들에게 전하려는 전국 농악인 여러분과 농악 명인, 그리고 굿 명인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1회 대회를 통해 농악이 "인류의 창의성과 문화다양성 증진에 이바지하고 다양한 공동체간 두레의 정신으로 대동의 삶을 이루어 내는데 기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펼쳐지는 농악과 굿판을 함께하며 코로나와 장마의 피해를 털어내고 신명을 통해 활기찬 일상을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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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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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이담농악보존회, 평창농악축제 개막식 초청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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